고등학교 교과서 영어2 YBM 시사 박준언 4과 본문 및 해석 MP3 



Lesson 4

 

Breaking the Unbreakable

견고한 편견 허물기

 

Today, women are displaying their talents and abilities in almost every domain of human effort.

오늘날 여성들은 거의 모든 인간 노력의 영역에서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They compete with men in once male-dominated sectors, such as politics, business, science and technology, and sports.

그들은 정치, 비즈니스, 과학 기술, 스포츠와 같이 한때 남성이 지배하던 영역에서 남성들과 경쟁하고 있다.

 

In the course of time women's rights have progressed a lot and now everyone accepts women in these roles as natural.

세월이 흐르면서 여성들의 권리는 크게 향상되어 왔고, 이제 누구나 이러한 역할을 하는 여성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Most people would be surprised to know, however, that as recently as the 1960s, women were severely restricted in their working lives due to irrational discrimination against them.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과 1960년대만 해도 여성들에 대한 비합리적 차별로 인해 여성들이 자신의 삶에서 심하게 제약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놀랄 것이다.

 

Even in America, where equality has long been considered one of the noblest human values, women were once not able to enjoy the same rights and privileges as men for no reason except that they were women.

평등이 오랫동안 가장 고귀한 인간의 가치로 여겨져 미국에서조차 여성들은 한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들과 동일한 권리와 특권을 누릴 없었다.

 

Women also were not eligible for admissions to Ivy League universities.

여성들은 또한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Yale and Princeton did not accept women students until 1969.

예일 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교는 1969년이 되어서야 여학생들을 입학시켰다.

 

In some states in America women were kept out of jury pools because they were thought to be too fragile to hear the horrible details of crimes and too sympathetic by nature to be able to remain objective about those accused of offenses.

미국의 일부 주에서, 여성들은 범죄의 끔찍한 세부 내용들을 듣기에 너무 연약하고 또한 선천적으로 범죄 피의자들에 대해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배심원단에서 제외되었다.

 

Banks could refuse to issue a credit card to an unmarried woman.

은행들은 비혼 여성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하는 것을 거부할 있었다.

 

Even if she was married, her husband was required to sign for it.

비록 여성이 결혼하였더라도 남편이 서명을 해야 했다.

 

During the 1960s revolutionary changes emerged in American society.

1960년대에 미국 사회에 혁명적 변화가 나타났다.

 

Initially, the demands for change were triggered by sustained racial discrimination against African-Americans.

처음에는 변화에 대한 요구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한 지속적인 인종 차별로 인해 촉발되었다.

 

Led by the Civil Rights Movement, which called for all people to receive equal treatment, people who had been treated unfairly in American society began to organize collective movements to regain their suppressed rights.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있도록 요구한 민권운동에 고무되어, 미국 사회에서 불공정하게 대우받았던 사람들이 억압받았던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집단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They demanded equality for all people regardless of race, sex, age, disability, national origin, religion, or other characteristics.

그들은 인종, 성별, 연령, 장애, 국적, 종교, 기타 특성들과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평등을 요구하였다.

 

It was this social environment of the 1960s that made American women begin to challenge both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restrictions put upon them by outdated cultural and societal stereotypes, struggling to gain their due rights as equals to men.

미국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인격체로서 자신의 마땅한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면서 구식의 문화적, 사회적 고정관념들로 가해지는 가시적, 비가시적 제약들에 도전하기 시작했던 것은 1960년대의 바로 이러한 사회 환경에 기인한 것이었다.

 

The following story shows you how a brave female athlete, Kathrine Switzer, was able to overcome one barrier in the male-dominated athletic culture.

다음의 이야기는 용감한 여성 운동선수 캐서린 스위처(Kathrine Switzer) 어떻게 남성이 지배하는 육상운동 문화의 장벽을 극복할 있었는지 보여준다.

 

Kathrine Switzer was born in Germany, the daughter of a major who was stationed there in the United States Army.

캐서린 스위처는 독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 육군 소령의 딸로 곳에서 태어났다.

 

She graduated from high school in Virginia and entered Syracuse University in the mid-1960s.

그녀는 Virginia 주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대 중반에 시라큐스 대학교에 입학했다.

 

Having had a passion for running since childhood, she looked for a women's running team in the university.

어린 시절부터 달리기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대학에서 여성 달리기 팀을 찾고 있었다.

 

To her regret, there was none, neither there nor anywhere.

유감스럽게도 대학교뿐 아니라 어느 곳에도 여성 달리기 팀은 없었다.

 

She trained unofficially with the men's cross-country team.

그녀는 비공식적으로 남성 크로스컨트리 팀과 훈련했다.

 

There she caught the eye of 50-year-old volunteer coach, Arnie Briggs.

그곳에서 그녀는 50세의 자원봉사자 코치인 어니 브릭스(Arnie Briggs) 주목을 받았다.

 

She wanted to run in the famous Boston Marathon, but Briggs intensely discouraged her, saying women could not run in the marathon because they were too fragile to complete the long distance race.

그녀는 보스턴 마라톤에서 달리고 싶었지만 브릭스는 여성은 너무 연약해서 장거리 경주를 완주할 없기 때문에 마라톤에서 없다고 말하며 강력하게 그녀를 말렸다.

 

Upon her insistence, Briggs finally agreed to let her sign up for the race.

그녀가 고집을 부리자, 브릭스는 마침내 그녀가 마라톤에 참가 신청하는 것을 허락했다.

 

Switzer and her coach checked the rule book and entry form.

스위처와 그녀의 코치는 규정집과 참가 양식을 검토했다.

 

At that time, it was taken for granted that only men could enter the race.

당시에는 오직 남성만이 레이스에 참여할 있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To avoid the controversy that would come with her registration as a woman, she entered as "K.V. Switzer."

그녀가 여성으로서 등록하는 것에 따라올 논란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K.V. Switzer 등록했다.

 

In 1967, the Boston Marathon was on April 19.

1967 보스턴 마라톤은 4 19일에 열렸다.

 

She had no idea she was going to become a part of the race's history.

그녀는 자신이 레이스 역사의 일부가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She was given the bib number 261.

그녀는 참가번호 261번을 부여받았다.

 

There were 741 people listed on the program.

프로그램에는 741명이 등록되어 있었다.

 

Boston had always been a mecca for marathon runners.

마라톤 주자들에게 보스턴은 언제나 메카와 같은 성지였다.

 

Now Switzer, too, was one of the pilgrims.

이제 스위처도 순례자들 사람이었다.

 

At about the four-mile mark in the race, there was a man in the middle of the road shaking his finger at Switzer.

레이스의 4마일 표시 지점에서 남자가 도로 한가운데에서 스위처를 향해 자신의 손가락을 가로젓고 있었다.

 

He was Jock Semple, the race director of the marathon.

그는 조크 셈플(Jock Semple), 마라톤 레이스 감독이었다.

 

He screamed, "Get the hell out of the race and give me your number!"

그는 "레이스에서 빠지고 내게 당신 참가번호를 !"라고 소리를 질렀다.

 

Then he swiped down her front, trying to tear off her bib.

그리고 그는 그녀의 가슴을 후려치며 그녀의 참가번호를 떼려고 하였다.

 

Switzer was so surprised and frightened that she turned to run away.

스위처는 너무 놀라고 두려워서 달아나기 위해 등을 돌렸다.

 

Semple continued to swipe at the bib number on her back.

셈플은 계속해서 그녀의 등에 붙어있는 참가번호를 후려쳐 떼어내려고 했다.

 

Having never felt such embarrassment and fear before, she wondered if she should step off the course.

이전에 그러한 당혹스러움과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코스에서 이탈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That thought, however, was only a flicker.

그러나 생각은 잠시 스쳐가는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She knew if she quit, nobody would ever believe that women could run a 26-plus mile race.

그녀는 만약 자신이 레이스를 중단한다면 아무도 여성이 26마일 이상의 레이스를 달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Her emotion turned from fear to anger.

그녀의 감정은 공포에서 분노로 바뀌었다.

 

I have to finish this race. I have to, even on my hands and knees.

 

 

IfIdon'tfinish,peoplewillsaywomencan'tdoit.

'나는 레이스를 완주해야 한다. 손과 무릎으로라도 완주해야만 한다.

 

If I don't finish, people will say women can't do it."

만약 내가 완주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여성은 마라톤 완주를 없다고 말할 것이다.'

 

At last she crossed the finish line and stepped into a different life.

마침내 그녀는 결승선을 통과했고 이전과는 다른 삶에 발을 내딛었다.

 

Switzer finished the race in 4 hours, 20 minutes, proving with an official bib number and time that women are capable of running long distances.

스위처는 4시간 20분에 완주하면서 자신의 공식 참가번호와 시간 기록으로, 여성들도 장거리를 달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To the male runners it was a one-off event.

남성 마라토너들에게 그것(마라톤 완주) 1회성 이벤트였다.

 

Without a doubt, it was a lot more than that to Switzer.

의심의 여지없이, 스위처에게 마라톤 완주는 1회성 이벤트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After the historic race in Boston, Switzer, along with other women runners, tried to convince the Boston Athletic Association to allow women to participate in the marathon.

보스턴에서의 역사적인 레이스 이후에 스위처는 다른 여성 달리기 선수들과 함께 보스턴 육상 연맹(Boston Athletic Association) 설득해서 여성들이 마라톤에 참가할 있도록 노력했다.

 

Finally, in 1972, women were officially allowed to run in the Boston Marathon for the first time.

마침내 1972 여성들은 최초로 보스턴 마라톤에서 공식적으로 달릴 있게 되었다.

 

Her ceaseless efforts to achieve gender equality in the marathon finally led the 1984 Olympic Games to introduce the women's marathon for the first time in its history.

마라톤에서 평등을 실현하려는 그녀의 부단한 노력은 마침내 1984 올림픽 경기 역사상 최초로 여성 마라톤을 도입하도록 이끌었다.

 

For her part, Switzer was inducted into the National Women's Hall of Fame in 2011 for creating a social revolution by empowering women around the world through running.

스위처 자신은 달리기를 통해 세계 여성들에게 권능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혁명을 창출한 공로로 2011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National Women's Hall of Fame) 올라가게 되었다.

 

In 2017, at the age of 70, Kathrine Switzer once again ran in the marathon, getting the media's attention globally with the same bib number 261 that was assigned to her in 1967.

2017, 70세의 나이에, 캐서린은 1967 자신에게 부여된 참가번호와 동일한 261번을 붙이고 세계 대중 매체의 주목을 받으며 한번 레이스를 달렸다.

 

That marked the 50th anniversary of her historic marathon in Boston.

그것은 그녀의 보스턴에서의 역사적 마라톤 완주 5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At her advanced age, she finished in 4:44:31, a remarkable achievement.

노령의 나이에 그녀는 4시간 44 31초에 완주함으로써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다.

 

She had told the media that she decided to run in the Boston Marathon again to prove that even people at her age could successfully complete a marathon.

그녀는 대중 매체에게, 그녀 나이의 사람들도 마라톤을 성공적으로 완주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보스턴 마라톤에 다시 참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해왔다.

 

Now she dreams of another revolution in athletics by securing acceptance of the notion that elderly runners should be able to compete with younger ones.

이제 그녀는 노령의 주자들도 젊은 선수들과 함께 경주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한 인정을 받음으로써 육상에서의 다른 혁명을 꿈꾸고 있다.

 

In honor of Switzer's accomplishment, the Boston Athletic Association announced it would retire bib number 261, and not assign it to any future runner.

스위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보스턴 육상 연맹(Boston Athletic Association) 그녀의 참가번호 261번을 영구 사용중지하고 미래의 주자들에게 번호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Posted by 최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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