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영어2, 동아 권혁승, 4과 본문 해석 음원 mp3, 영어교과서 오디오북, Rousseau 함께 하는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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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eekend with Rousseau

Rousseau 함께 하는 주말

 

Have you seen this painting before?

여러분은 전에 그림을 적이 있는가?

 

This piece is entitled The Sleeping Gypsy.

작품의 제목은 '잠자는 집시'이다.

 

It shows a woman in colorful clothing sleeping in the desert.

그림은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여인이 사막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There is a lion behind her.

그녀 뒤에는 사자가 마리 있다.

 

The lion, not wanting to disturb her, but curious about her presence, looks on.

사자는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녀의 존재를 궁금해 하며 지켜본다.

 

The gentle light of the moon illuminates the painting, and brings about a sense of peace and harmony between the animal and the human.

부드러운 달빛이 그림을 밝히고, 동물과 인간 사이의 평화와 조화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The Sleeping Gypsy is an oil painting completed in 1897 by Henri Rousseau (1844-1910).

'잠자는 집시' Henri Rousseau (1844-1910) 의해 1897년에 완성된 유화이다.

 

Ridiculed by many critics during his lifetime, he eventually came to be recognized as an artistic genius.

그의 생전에는 많은 비평가들에게 비웃음을 당했지만, 그는 결국 천재 화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Sunday painter

일요일의 화가

 

Rousseau was born in the town of Laval, in France's Loire Valley.

Rousseau 프랑스 Loire 계곡의 Laval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After the death of his father in 1868, he moved to Paris to support his widowed mother.

그의 아버지가 1868년에 돌아가신 후에, 그는 미망인이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파리로 이사했다.

 

He got a job as a toll collector in 1871.

그는 1871년에 통행세 징수원으로 취직을 했다.

 

It was at this time that he started to paint in his spare time as a hobby.

그가 취미로 여가 시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He never received formal training.

그는 결코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다.

 

He taught himself to paint by copying paintings in the art museums of Paris or by sketching in the city's botanical gardens and the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그는 파리의 미술관에 있는 그림을 모사하거나 시의 식물원과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서 스케치를 함으로써 그림을 독학했다.

 

Rousseau openly claimed that he had "no teacher other than nature."

Rousseau 자신에게 '자연 이외에 다른 스승은 없다' 공공연하게 주장했다.

 

Being a self-taught painter, Rousseau developed a highly personal style with an absence of correct proportions, a flat perspective, and the use of sharp, often unnatural, colors.

독학 화가로, Rousseau 정확한 비율이 없고, 원근법이 평면적이며, 강렬하고 종종 부자연스러운 색을 사용하는 매우 개인적인 화풍을 개발했다.

 

His portraits and landscapes often have a childlike, "naive" quality, and some of his paintings look like scenes out of dreams.

그의 초상화와 풍경화는 흔히 어린애 같은, '천진난만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의 그림 몇몇은 꿈에 나오는 장면들처럼 보인다.

 

In 1893, at the age of 49, Rousseau retired from his job as a toll collector, and started to paint full time.

1893, 49세의 나이에, Rousseau 통행세 징수원직에서 퇴직하고 전업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Nevertheless, he became widely known by the nickname of Le Douanier (the customs officer), a reference to his old job.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예전 직업을 언급하는 말인 Le Douanier(세관원)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Jungle-themed paintings

정글을 테마로 그림

 

Rousseau is best known for his jungle-themed paintings even though he never saw a jungle, or even left France.

Rousseau 비록 정글을 보거나 심지어 프랑스를 떠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글을 테마로 그림으로 가장 알려져 있다.

 

His knowledge of tropical plants and animals came mainly from the botanical gardens and zoos of Paris, as well as from academic sculptures and wildlife pictures.

그의 열대 식물과 동물에 대한 지식은 주로 학술적인 조각상이나 야생 동물의 사진뿐만 아니라 파리의 식물원과 동물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Rousseau once described his frequent visits to the botanical gardens as follows:

Rousseau 한번은 자신이 식물원에 자주 가는 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When I go into the glasshouses and I see the strange plants of exotic lands, it seems to me that I enter a dream.

온실에 들어가서 이국적인 나라의 낯선 식물을 , 나는 꿈에 들어서는 같다.

 

He also met with soldiers who had fought in the jungles of Mexico, and he listened to the stories of these men to gain inspiration for his jungle paintings.

그는 또한 멕시코의 정글에서 전투를 했던 병사들을 만나, 그의 정글 그림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His first jungle-themed work was Tiger in a Tropical Storm, which shows a tiger preparing to jump on its prey in the middle of a raging thunderstorm.

정글을 테마로 그의 작품은 '열대 폭풍우 속의 호랑이'였는데, 이것은 거센 뇌우 속에서 먹이에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는 호랑이를 보여 준다.

 

It was exhibited in 1891, and resulted in Rousseau's first serious review.

그것은 1891년에 전시되었는데, Rousseau 대한 진지한 비평이 처음으로 나왔다.

 

Felix Vallotton, a fellow artist and critic, wrote: "His tiger surprising its prey ought not to be missed; it's the alpha and omega of painting."

동료 예술가이자 비평가인 Félix Vallotton '먹이를 놀라게 하는 그의 호랑이를 놓쳐서는 된다. 그것은 그림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라고 썼다.

 

However, the uniqueness of Rousseau's style the exaggerated scale, simplified forms, and blocks of vivid color provoked mixed reactions.

그러나, Rousseau 화풍의 독특함, 과장된 비율, 단순화된 형태, 그리고 선명한 색의 덩어리는 엇갈리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Despite the positive response to the painting from Vallotton, it was over a decade before Rousseau returned to the jungle as a major theme.

그림에 대한 Vallotton 긍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Rousseau 주요 테마로써 정글로 돌아간 것은 10년도 지나서였다.

 

By 1905, his reputation had grown sufficiently to exhibit The Hungry Lion Throws Itself on the Antelope.

1905년까지, 그의 명성은 충분히 높아져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 전시할 정도였다.

 

This painting features a jungle scene lit by a deep red setting sun.

그림은 짙은 붉은색의 석양이 비춘 정글 장면이 특징이다.

 

In the foreground, a lion bites deeply into the neck of an antelope.

전경(前 景)에는, 사자가 영양의 목을 깊숙이 물고 있다.

 

Other animals are visible in the thick forest:

울창한 숲속에서는 다른 동물들이 보인다.

 

a panther watches from the right, and an owl stares out of the background in the center, with a second bird and a dark ape-like shape to the left.

표범은 오른쪽에서 바라보고 있고, 올빼미가 중앙 뒤쪽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으며, 번째 새와 검은 유인원 같은 형상도 왼쪽에 있다.

 

Rousseau based the central pair of animals on a stuffed animal display in the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Rousseau 중앙의 쌍의 동물에 대한 기준을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 있는 박제 동물 전시에 두었다.

 

Rousseau painted more than 25 pieces with jungle themes.

Rousseau 정글을 테마로 하여 25 이상의 작품을 그렸다.

 

Although his paintings seemed simple at first glance, they were built up carefully in layers, using a large number of green shades to capture the richness of the jungle.

비록 언뜻 보기에 단순해 보이지만, 그의 그림은 정글의 풍성함을 담아내기 위해 녹색의 수많은 조를 사용하여 조심스럽게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He also devised his own method for depicting rain by trailing strings of silver paint diagonally across the canvas.

그는 또한 캔버스를 가로질러 은색 물감 줄을 대각선으로 끌어 비를 묘사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고안했다.

 

This technique inspired later artists.

기법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Recognition of a genius

천재성을 인정받음

 

Rousseau's work earned the admiration of modern artists including Pablo Picasso.

Rousseau 작품은 Pablo Picasso 포함한 현대 예술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When Picasso happened upon a painting by Rousseau, the younger artist instantly recognized Rousseau's genius.

Picasso Rousseau 그림을 우연히 발견했을 , 젊은 예술가는 즉각적으로 Rousseau 천재성을 알아보았다.

 

In 1908, Picasso held a party to honor Rousseau and his work.

1908년에, Picasso Rousseau 그의 작품을 기리는 파티를 열었다.

 

However, in spite of his popularity among his fellow artists, Rousseau continued to be seen as a figure of amusement in the art world.

그러나 동료 화가들 사이에서의 그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Rousseau 예술 세계에서는 계속해서 우스움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It was only after his death in 1910, at the age of 66, that the name Henri Rousseau became famous.

Henri Rousseau라는 이름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66세의 나이로 1910년에 그가 죽은 이후였다.

 

Although Rousseau took up art as a hobby, he managed to make his way to the top.

비록 Rousseau 취미로 미술을 시작했지만, 그는 정상까지 나아갈 있었다.

 

Today, he is known as one of the greatest "naive art" painters.

오늘날, 그는 가장 위대한 '나이브 아트' 화가 명으로 알려져 있다.

 

Posted by 최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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